최삼연 전 공군대령님의 진언, 그 뜻을 이어받아

대만과 조선은 일본에 합병될 당시의 상황이 다르니 단순 비교할 수는 없으나 얼마나 일본의 식민지 통치방식이 달랐으면(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텐데도) 대만의 경우 대다수가 친일인데 반해 한국은 해방 75년이 지난 지금도 반일 투쟁을 하고 있는 걸까? 일본이 사죄를 안 해서인가? 보상을 다 안 해서인가? 사죄하고 보상 다 하면 이제 반일감정을 앞세운 거국적 항일 투쟁은 좀 사그라들까? 역사관 가치관 다르고 사상의 자유도 있으니 반일이 다 없어질 필요는 없겠다. 일부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 반일 해도 되겠지만 우리의 경우 거국적인 것이 문제인 듯싶다.

식민지 근대화론도 모두 부정하는 건 아닐 테나 아무래도 우리 입장에서 보면 받은 거보다 빼앗긴 게 더 많다는 게 국민 정서다. 그러나 일본이 조선을 먹지만 않았더라면 과연 조선/대한 제국이 망하지 않고 존속할 수 있었을까? 필시 일본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나 중국, 미국 등의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어디의 식민지도 안 됐더라면 100년 뒤의 조선은 지금의 한국이 아닐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 수준 정도는 됐겠지만. 그만 타협점을 찾았으면 한다. 뺏은 쪽이 잘못이지만 나라 뺏긴 쪽은 전혀 문제가 없었을까? 뺏지 말고 그냥 원조나 해 주면 될 것이지 하는 건 지금에 와서의 생각이고 100년 전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시절에는 러시아, 중국, 일본, 서양열강 등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 조선의 실상이고 그 당시의 국제정세가 아니었을까? 친러, 친중, 친일 세력들 중에 만약 그때 친러 세력이 이겼더라면 러시아 식민지가 됐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 건 무엇보다도 조선이 스스로의 통치 능력을 상실한 것이 주원인이 아닐까. 조선 말기의 왕실과 조정이 친러 친중 친일로 이리저리 갈대처럼 갈팡질팡 하다가 결국은 그 어디든 이 나라를 맡겨야 했던 처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친일파의 매국행위를 규탄한다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조선 말기 왕실과 조정 중신들 모두도 규탄 받아야 할 것이다. 순종 왕이 친일 세력의 "강압에 어쩔 수 없이" 합병 문서에 도장 찍었다고 해서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조선 백성과 동격으로 일제의 피해자 취급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순종께서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통치자이지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정 중신들도 마찬가지다. 저항한 중신들도 있겠지만 입 다문 중신들도 많을 것이다. 일제를 비롯한 친일파는 모두 악이고 그 이외는 모두 피해자라는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나 왜 그런 국치를 겪게 됐는지 당시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과 이해가 필요하겠다.

한일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반일이 마치 애국인 것처럼 생각된다면 우리 스스로가 아직 정신적으로 일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꼭 조선총독부 건물을 부수고 친일 반역자 명부를 만들어 인민재판에 부치는 게 청산인가? 반일 국민 정서를 부추겨 덕보려는 사람들이 하는 일에 우리가 언제까지나 붙들려 있어야 하나?

사죄하고 보상을 다 해도 일본에 대한 미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겠지만/사라지지 않아도 되지만 그 감정으로 인해 일한 관계가 안 좋아지는 것은 우리의 경제발전과 안보 등 다방면에 있어서 이득이 될 게 없다. 그때그때 사안에 따라 합리적 이성적으로 반대할 건 반대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하되 거국적으로 반일 국민 정서를 동원해서 감정적으로 대결하려는 방식은 좀 접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가 대한민국의 민도와 국민성을 어떻게 볼까 걱정스럽다.

최삼연 선생님이 10년 전 인터뷰 기사에서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이해가 간다. 이제 좀 그 시대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우리 스스로를 성찰해 보자는 뜻에서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만 말하는 종전의 스타일과는 대담하게 거리를 두신 거다. 우리가 얼마나 피해 받고 억울했는지는 과거 70여 년간에 걸쳐 실컷 듣고 배우고 말하고 가르치고 했으니 이제는 좀 다른 측면도 보자는 취지에서다.

인터뷰할 당시는 「반일 종족주의」나 「제국의 위안부」같은 책이 나오기도 전인데 지금 생각하면 참 목숨 걸고 발언하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반일 국민 정서에 안 맞는 발언을 하면 이 땅에서 제대로 살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 말이 옳다는 걸 알아도 옳다고 찬동하기 또한 쉽지 않다. 반일 사냥꾼의 밥이 되어 원색적인 언어 폭력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잃어가며 충언을 하신 최 선생님 같은 훌륭한 어른이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반일 아닌 발언도 이 땅에 설 자리가 생길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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